비안카의 방에서 나온 볼프강을 향해 읽고 있던 책에서 시선을 볼프강에게로 돌린 파이가 물었다. “비안카는요?” “이제 막 잠들었어. 엄마랑 더 놀고 싶다는 거 간신히 동화책 5권 읽어주는 거로 무마했어.” 어쩐지 목소리 끝이 약간 갈라진 게 느껴지는 볼프강의 한숨 어린 푸념에 파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읽고 있었던 책 - 『아주 쉽다! 독일어 기초 문법』 이라는 책이다 –을 소파 바로 앞에 있는 탁상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볼프강은 아주 자연스럽게 파이의 옆에 안착했다. 이제 부부만의 소중한 대화 시간인 것이다. 볼프강은 파이가 방금 전까지 진지한 얼굴로 읽고 있던 책의 정체를 알자마자 눈살을 저절로 찌푸렸다. “너무 열심히 공부하는 거 아니야? 간단한 독어 회화 정도는 되잖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어느 유서 깊은 도시에는 르네상스 시대쯤에 만들어진 오래된 분수대가 하나가 있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그 분수대의 고풍스러움과 오랜 세월을 견딘 인내력에 감탄을 자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허나 이 분수대가 유명해진 것은 앞선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일명 ‘천생연분을 만나게 해주는 분수대’ 라는 것이었다. 그 분수대의 효험에 대한 증언은 인터넷에 카더라 소식으로 들려온 게시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 분수대의 영험함을 무언가에 단단히 꽂혀버린 독실한 신자같이, 그렇기에 한없이 진지한 말투로 주장을 하였다. 이에 이 분수대는 그 유명세에 힘입어 수많은 젊은 남녀들의 필수 배낭여행 코스로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물론 볼프강은 그런 거 믿지 않았다. 그냥 우연의 일치로 일어나게 된 것..
웬 아기 천사가 떨어졌다고 할 정도로 아이는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예닐곱 정도 되었을까? 어린 아이치고 이목구비가 제법 짙고 뚜렷하다. 갈색이 섞인 듯한 짙은 금발에, 독일인 중에서도 보기 드문 짙은 푸른색 – 언뜻 보면 보라색으로 보이는 - 의 벽안을 깜박이며 아이는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내리꽂고 있었다. 바로 청년이 팔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온 정신을 빼앗긴 것이었다. 아이의 심각한 표정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청년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들은 참으로 귀엽다. 게다가 청년은 아이들을 대체적으로 귀여워하는 편이었고, 이곳에서 2년 간 장사를 하며 많은 어린이 손님들을 상대해왔으나 이렇게 깜찍하게 귀여운 꼬마 손님은 또 처음이었다. 아이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릴 때마다 조각상이 움직이는 듯,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