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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一白二

黑一白二 04

애쿼머린 (루이벨라) 2019. 10. 1. 01:14

 한편, 파이에게 한 시간정도 성 주변을 산책하고 온다던 볼프강은...

 

 “이게 말이 되냐고!”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자리를 비켜줘야 할 거 같았기에, 1시간 정도 주변을 둘러보고 오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볼프강을 발걸음을 딛는 데마다 막다른 길이었고, 그렇게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숲을 돌고 돌다 종국에는 길을 잃어버리는 데에 그친 것이었다.

 

 볼프강은 들을 이가 아무도 없을 터인데도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무리 만화라도 이렇게 작위적인 설정은 안 한다고! 자주 드나들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게 말이 돼!?”

 

 도대체 누군가에게 하는 불평인지는 모르겠다만, 볼프강이 항상 다니던 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그걸 가장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은 볼프강 본인. 그리고 이렇게 사건이 전개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론 같은 것이니, 아주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볼프강이 파이와 결혼을 해서 어여쁜 딸을 낳았다는 것이 일종의 숙명론에 가까웠다...(라고 어딘가에서 타이핑을 치는 어떤 절대자가 말하였다!)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는 내레이션의 친절한 설명에 볼프강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 숙명이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마! 난 모든 것이 정해져있다는 식의 운명론 절대로 안 믿으니까!”

 

 그렇다, 파이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했던 것이 정해져 있는 운명이었다는 보장은 없었다. 볼프강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운명 타령이나 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어느 사람이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신조인지라,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무조건 싫어하려고 했던 청개구리 같은 심보였다.

 

 “...”

 

 ...그 사람 생각은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안 그러다가는 그 짜증나는 얼굴까지 같이 떠올려버릴 거 같거든...

 

 “...하아.”

 

 볼프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번 얼굴도 쓸어내렸다. 초조함이 볼프강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나 왜 이러냐. 왜 안 하던 혼잣말이나 하고...”

 

 옆에 비안카가 쪼르륵 붙어있을 거 같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비안카와 대화를 자주 나누다보니 눈앞에 상대가 안 보여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재주라도 생긴 것일까?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잠재우고, 최대한 이성을 빠르게 되찾은 볼프강은 일단 말 그대로 이성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꼬꼬마도 길을 안 잃어버릴 거 같은 얕은 숲에서 다 큰 성인인 자신이 길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는 비참한 사실 밖에 남지 않았다. 이리로 생각하나, 저리로 생각하나 이상하게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 볼프강은 그도 아닌 제3의 생각을 하기로 했다.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것부터 중요하겠지...”

 

 아무렴. 일단 걸어서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걸어서도 나갈 수 있겠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눈앞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길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에 있었지만. 시작을 하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큰 난제에 부딪혀버렸다. 볼프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비라도 내려주시는 자비 하나 없는 신()은 이 세상에 없겠지?”

 

 그리고 볼프강 슈나이더는 이 말을 정확히 4분 후에 후회했다. 4분이 지나자, 정확하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

 

 

 

* * *

 

 

 

 볼프강은 생각했다. 자신은 운명이니 뭐니 하는 건 안 믿지만! 그래도 신이라고 불리는 절대자 같은 존재는 한 명쯤은 계실 거라고. 그리고 그런 분이 계신다면 지금 자신이 난처해하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산 넘어 산의 상황을 계속 볼프강 앞에 하사해주실 리가 없었다!

 

 일단 근처의 큰 나무 밑에서 볼프강은 비를 피했다. 지나가는 소나기인지라 쉴 새 없이 퍼부었다. 그래도 나무가 가려주는 장소는 제법 넓어서 건장한 성인 남자 한 명이 비를 피할 수 있기에는 충분했다.

 

 비는 좀 길게 올 거 같아서, 볼프강은 그대로 앉았다. 자연스레 고개는 하늘을 향했다.

 

 볼프강은 비가 그치기를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길을 찾아, 다시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상황이었지만, 비를 맞으면서까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을 하는 건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서 볼프강은 그냥 비 맞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

 

 비가 오는 날에는 주변의 냄새가 더 짙어진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풀 냄새, 자연적으로 생긴 곰팡이 냄새, 그리고 좀 더 끈적이는 공기의 냄새...그런 것들이 은연중에, 볼프강도 모르는 사이에 인식된다.

 

 그런데 비 오는 날, 볼프강은 항상 불현 듯이 떠오르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볼프강은 그 장소를 싫어했지만 비 오는 날은 더 싫어했다. 안 그래도 퀴퀴한 책 곰팡이 냄새가 비가 오는 날에는 이상하리만큼 더 진해져서.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람도 같이 떠오르곤 한다. 볼프강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그만 생각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은.”

 

 볼프강은 기껏 아침에 잘 정돈하고 온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뭐라도 안하면 그 사람을 자꾸만 생각하게 될 거 같아서. 그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볼프강은 행복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비안카, 그래 예쁜 내 새끼.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예쁜 내 딸. 파이 윈체스터,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 인생의 동반자.

 

 “...이제 좀 낫군.”

 

 이 둘의 얼굴은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흐뭇해 미칠 지경인데, 왜 그 사람은...아아, 또 그 사람을 생각할 뻔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 두 명에게 이상한 게 묻힐 뻔 했다. 볼프강은 다시 아내와 딸의 얼굴을 열심히 곱씹었다. 비안카의 생일날, 같이 케이크의 촛불을 끄던 모녀(母女). 벨리알의 헹가레를 좋아하는 비안카와, 왜 아이한테 그런 위험한 놀이를 시키냐며 자신을 핀잔하던 파이의 얼굴...

 

 좀 생각이 깊어진 모양이다. 이제는 목소리까지 들렸다.

 

 “...아빠!”

 

 아, 아빠래. 이건 분명히 비안카의 목소리였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내는 목소리였다. 귀엽고, 그와 더불어 짓는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부탁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마성의...

 

 “아빠!”

 “...”

 “볼프강 슈나이더!”

 ‘...?’

 

 자신의 이름을 들은 볼프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행복한 감상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현실로 되돌아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직후에 했다. 바로 눈앞에 뚱한 표정으로 노란색 우비를 입은 비안카가 서 있었기 때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현실감에 볼프강은 잠시 멍했다. 그래서 조심히 딸을 불러보았다.

 

 “...?”

 “, 딸이야.”

 “정말 비안카 슈나이더?”

 “당연히 아빠 딸 비안카 슈나이더지. 아빠 왜 그래?”

 

 저 반응을 보니 비안카가 맞았다. 비안카는 아버지가 좀 멍청하다고 생각될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이 영 어색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안카에게 볼프강은 엄하면서도 공과 사가 철저한 완벽초인에 가까웠으니. 아무튼 비안카만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쪽에서 직후에 들리는 목소리가 또 하나.

 

 “선배!”

 

 파이, 파이였다. 파이는 우비는 입지 않았지만 우산을 든 채로 슈나이더 부녀(父女)에게로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분명 직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다 느끼고 있던 볼프강은, 삽시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기운까지 치솟았다.

 

 볼프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달려온 파이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볼프강의 행동에 파이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볼프강이 세게 껴안고 있었기에, 어차피 잘 움직이지도 못했을 테지만.

 

 “, 선배?”

 “...잠깐 이대로 있자.”

 

 아, 이제야 좀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파이의 체온이, 체향이 볼프강의 몸을 흠뻑 적셔주었다. 볼프강은 금방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아래에서 비안카가 총총 점프하며 소리쳤다.

 

 “나도! 나도! 엄마 안을래! 아빠만 엄마 안다니!”

 “...네네, 우리 공주님도 같이 안자.”

 

 볼프강은 딸의 볼멘소리를 곧장 수용해서, 한 손으로는 비안카를 들은 채로, 나머지 한 손으로 다시 파이의 몸을 감쌌다.

 

 세 가족은 잠시 온전히 이대로 있었다. 파이가 물었다.

 

 “선배,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그냥 힐링이 필요할 거 같아서.”

 

 그 망할 놈의 아버지 하나 때문에. 이 뒷말을 쏙 삼켰지만. 파이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선배, 우산이 없어서 못 돌아온 겁니까, 아니면 길을 잃어버린 겁니까?”

 “...”

 

 아이 앞에서는 웬만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건 필시 고민을 하게끔 만들었다. 볼프강은 조그맣게 속삭였다.

 

 “...후자.”

 

 비안카는 못 듣고, 파이에게만 들리게끔. 그런데 전혀 다른 의도가 되어, 도리어 파이가 듣지 못하고, 비안카가 들어버렸다. 비안카가 큰 소리로 아빠에게 되물었다.

 

 “아빠, 정말 길 잃어버렸어?!”

 “...”

 

 묵비권도 하나의 권리다. 여기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자...볼프강은 사냥터지기 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굳건히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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