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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一白二

黑一白二 05

애쿼머린 (루이벨라) 2019. 10. 26. 00:27

 -슈나이더 씨.

 

 누군가가 볼프강을 불렀다. 유니온과 관련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유니온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면 저런 칭호보다는 볼프강 슈나이더 요원이라고 불렀을 테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알고 있는 어느 일반인? 잠깐 생각을 하던 찰나에 그 목소리가 또 한 번 볼프강을 불러 재꼈다.

 

 -미스퉈 슈, 나이더er~

 

 전에 불렀던 것과 달리 조금 장난스럽게, 혀를 꼰 발음이었다. 앞선 말도 솔직히 따지고 보면 ‘Mr.슈나이더지만 그건 그래도 격식을 차린 말투기라도 했지. 그리고 저 잔뜩 꼬아서, 그래서 분명 상대방이 자신을 비꼬고 있는 것이 분명히 느껴지게 하는 저 말투를 가진 이를 볼프강은 소름 돋지만 알고 있었다.

 

 볼프강은 자신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는 척 하면 골치가 아플 상대방 상위권에 속해 있는 자이기에 볼프강은 일부러 무시했다. 그러자 볼프강을 두 번이나 부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일부 빈정거리면서 이번에는 세 번째로 볼프강을 불렀다.

 

 -이봐요, 미스터 슈나이더 씨.

 -...

 

 드러난 얼굴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똑같이 닮은 얼굴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내보다 더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이 풍부하고, 조금은 싸늘한 시선으로 자기를 올려다보는 것. 굳게 낀 팔짱은 도저히 볼프강에게 절대적인 호의를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봐요, 일부러 내 말 무시한 거죠?

 

 이런 광경을 볼프강은 아주 오래 전에 경험했었다. 볼프강은 그 때 상황처럼, 똑같은 대꾸를 그제야 중얼거렸다.

 

 -저기, 처제...

 -내가 왜 당신 처제에요?

 -...

 

 이런 싸늘한 반응도 그 때랑 똑같다. 볼프강이 끈덕지게 처제라고 부르는 사람은 볼프강을 절대로 형부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고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다.

 

 -난 당신 같은 사람, 인정할 수 없어요!

 -...

 -그러니까 똑바로 알아서 몸 관리 잘하싶쇼? 암살당하기 싫으면.

 -...

 

 잘못하다가는 일단 목숨부터 걱정해야할 지경이었다. 볼프강은 항상 자신의 배후에서 기습해올 어느 유능한 암살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 * *

 

 

 

 “선배, 괜찮으세요?”

 “...?”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이십니다.”

 “그냥 잠자리가 낯설었나봐.”

 

 볼프강은 졸린 지 눈을 비볐다. 세 식구는 이른 아침, 사냥터지기 성에 나와 본래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볼프강은 운전석, 파이는 조수석, 그리고 비안카는 뒷자리 안전 시트에서 마저 잠에 빠져 있었다.

 

 볼프강이 길을 잃어버린 탓에, 수색하는 데에 시간이 흘러 결국 예정에 없던 사냥터지기 성에서 1박을 묵었다. 허나 예전에 볼프강과 파이가 묵었던 방에는 다인용 침대가 없었다. 비안카가 엄마와 아빠랑 다 같이 자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탓에, 그리고 같은 방을 쓰는 것이 내일 아침 일어나는 데에도 더 수월할 거 같아서, 결국 손님용 방에서 자게 된 탓이었다. 사냥터지기 성에서 오랫동안 묵었지만 그건 자신의 안락함이 있는 개인의 방에서였지, 손님용 방에서 지내는 건 처음이라 이상하게 낯설었다. 결국 그렇게 낯설었던 환경 탓인지, 꿀잠을 잔 파이와 비안카와는 달리 볼프강은 거의 선잠을 잤다. 심지어 잠깐 잠들었던 와중에도 정말로 무서운 꿈도 꾸었다.

 

 뭐, 슈에를 만났을 당시에 있었던 일이 조금 과장되어서 꿈에서 보였을 뿐이다. 실제로 슈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저렇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니까 똑바로 알아서 몸 관리 하시지 말입니다. 암살당하기 싫으시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요.

 “...”

 

 ...그래도 꿈속보다는 조금은 정중하기는 했다. 거기서 위안을 얻자!

 

 후! 정말로 끔찍한 꿈이었다. 볼프강은 일부러 쾌활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이런 식은땀 일어나는 일은 지금 당장에 일어나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도 여기 자신들이 있는 곳은 독일, 슈에가 있는 곳은 중국에서도 좀 산속 깊이 있는 마을. 일단 공간적인 거리감이 매우 크다. 슈에는 유니온에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위상능력자가 아니기에 그 먼 거리를 빠른 시간 내에 오고 갈수도 없었다. 게다가 슈에가 처한 상황도 한몫 했다. 슈에는 일족의 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에 있는 자. 함부로 위험에 빠지는 일을 만들게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위험에 빠지는 일에는 장거리 여행이라는 것도 포함이 될 것이다.

 

 하하하, 괜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오랜만에 쌍둥이라서 아내와 똑같은 얼굴을 한 처제가 꿈에 나와서 약간의 독설을 내뱉어준 것뿐이니까.

 

 하하하, 전혀 걱정할 필요...

 

 “안녕, 언니!”

 “슈에! 여긴 어쩐 일이니!”

 

 ...걱정할 필요 무지 있구나. 볼프강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즐거운 우리의 스위트 홈에 돌아왔는데, 대문 앞에 웬 여자가 커다란 짐 꾸러미와 함께 서 있어서. 그리고 그 여자는 지금 자신의 옆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내의 쌍둥이 여동생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아내는 아주 자랑스러운 동생이 나타난 것에 대해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 금의환향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꿈일 뿐이라며 하하호호하던 현재의 볼프강은 차마 슈에와 눈도 못 마주치겠어서, 운전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볼프강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힐끗 시선을 올려다보니 밖에는 여전히 똑같은 얼굴의 두 자매가 재미있게 서로의 근황을 묻고 있는 중이었다. 볼프강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볼프강에게 오늘 아침에 꾼 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설마 그 꿈, 악몽이 아니라 예지몽인 거야!?’

 -그러니까 똑바로 알아서 몸 관리 잘하싶셔? 암살당하기 싫으면.

 

 말뿐인 협박만으로도 천하의 볼프강을 공포에 떨게 한 위인.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볼프강의 뒤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상당히 거리가 되던 탓에 아침에 못 잔 잠을 마저 다 잔, 비안카가 깨어난 소리였다.

 

 비안카는 여직도 잠에서 덜 깬 목소리였다.

 

 “우음...아빠...”

 “, ? , 일어났어?”

 “집이야? 엄마는?”

 “, 엄마는 밖에...”

 “...밖에?”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밖에 있다는 소식에 비안카는 자연스레 창문 쪽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생긴 엄마와 이모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큰 소리로 외쳤다.

 

 “슈에 이모!”

 “그래, 슈에 이모가 왔네.”

   

 볼프강의 그 대답은 어쩜 한숨처럼 들렸을 지도 모른다.

 

 파이는 당연하고, 비안카도 슈에를 무척 좋아했다. 이 슈나이더 가()에서 슈에를 껄끄럽게 여기는 인물은 오로지 볼프강밖에 없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슈에도 볼프강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듯 했다. 아니, 껄끄럽다는 표현보다는 훨씬 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감정을 가지고 있을 터이지만.

 

 비안카는 두 번째로, 슈에를 향해 달려갔다. 그 귀여운 얼굴에 어울릴만한,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로.

 

 “이모!”

 “우리 비안카 공주님! 잘 지냈어?”

 

 슈에는 비안카를 이름으로도 부르는 일이 있었지만, 조카 혹은 공주님이라고 많이 불렀다. 생각해보면 공주님이라는 호칭의 빈도가 제일 높았다. 슈에에게 있어서 비안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천사, 혹은 꼬마 공주님. 슈에도 비안카를 조카로서 너무도 사랑했다. 슈에가 볼프강에게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로. 어찌 보면 당연했다. 비안카는 슈에가 가장 사랑하는 언니의 딸이었으니까.

 

 자기만 차에 홀로 있는 것도 좀 겸연쩍었는지, 볼프강이 마지막으로, 앞선 두 사람과는 다르게 느릿하게 하차했다. 애써 침착하게 인사하려고 하는 볼프강의 의지가 다음 대사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다.

 

 “아하하..., 오랜만이네, 처제.”

 “...형부...도 계셨네요.”

 “당연하지. 여기는 내 집이기도 하니.”

 “...그랬었죠...”

 

 훈훈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냉각시키는 재주는 본디 볼프강이 가진 것은 아니다. 그냥 서로 불편해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숨이 막혀온다. 싸늘하다. 비수가 가슴에 날아와 꽂혀버린다. 이 급속 냉각기 같은 분위기를 읽는 건 당사자 둘 뿐이지, 세상만사에 낙천적인 두 모녀(母女)는 이 분위기를 읽지 못했다. 그러기에 가능한 권유였다, 저것은.

 

 “그럼 슈에, 밖에 있기도 계속 그러니 일단 안으로 들어갈까?”

 “, 그럴까? 우리 공주님, 이모가 한 번 안아 봐도 돼? 얼마나 컸는지 좀 보자!”

 “이모, 놔줘, 놔줘! 간지러워!”

 

 누가 보면 저 세 사람이 집에 사는 원래의 가족인 줄 알겠다. 볼프강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차 트렁크를 열어 전날 사냥터지기 성에 다녀오며 꾸린 짐들을 내렸다. 덤으로 그냥 대문 앞에 팽개치고 간, 슈에의 트렁크도 같이 힘겹게 대문 안으로 들였다.

 

 

 

* * *

 

 

 

 짐 정리를 하고 돌아와 보니 한창 세 사람은 대화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슈에는 도저히 볼프강이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로, 파이와 비안카를 대하고 있었다. 일단 볼프강 앞에서의 슈에는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진다. 표정 변화는 의외로 많은데, 그 변화를 이루어주는 감정이 전부 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볼프강은 슬쩍 보니 다과가 필요할 거 같아 부엌으로 홀로 들어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좋아할만한 것들로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도중에 슈에가 불쑥 나타났다. 볼프강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한 척 계속 다과를 준비했다. 부엌과 거실이 이어진 복도 쪽 벽에 기대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슈에의 형용할 수 없는 그 표정을 보고 볼프강이 넌지시 말했다.

 

 “, 용케도 파이와 비안카 앞에서는 그런 표정 안 짓는구나.”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죠.”

 “그럼, 지금 나한테 대하는 건 공적인 거란 거야?”

 “공적이라뇨. 당연히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죠.”

 

 볼프강이 슈에에게 가진 감정은 사실 별 거 아니었다. 그냥 사랑하는 아내와 똑같이 닮은 쌍둥이 처제정도? 그에 비해 슈에가 볼프강에게 가진 감정은 검열이 될 정도로 조금은 딥 다크(Deep Dark)한 것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사적인 거 같은데. 조금 공적인 관계도 넣었으면 하고 청원하는 바이다.”

 “바로 기각합니다.”

 “너무하는군.”

 “우리 첫 만남 때, 내가 그러지 않았나요? 나는 볼프강 슈나이더 씨 형부로 인정할 생각 없다고. 그리고 그건 아직도 유효한 발언이에요.”

 

 갈 길이 아직 멀군. 볼프강은 비릿하게 웃었다. 슈에는 파이와 비안카 앞에서만 형부 그것도 매우 어색하고 힘겹게 라고만 부르지, 그 외의 상황에서는 저렇게 풀 네임을 불렀다. ‘볼프강 슈나이더 씨라고. 존칭을 하는 건데도, 이상한 빈정거림이 느껴지는 신기한 호칭이었다.

 

 “그보다 처제,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 처제라는 칭호도 듣기 싫다고 했잖아요. 나도 당신을 볼프강 슈나이더 씨라고 부르는데, 절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나한테는 상관있어. 만약 내가 그렇게 무례하게 군다면, 파트너...그러니까 파이가 무척 슬퍼할 거야.”

 “...언니 이름은 그렇게 잘만 부르면서.”

 

 슈에가 투덜거렸다. 파이의 이름을 부르는 볼프강의 목소리에 범접할 수 없는 애정이 담겨져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 싶어 하셨죠?”

 “그래...내가 알기로는...그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신분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거든.”

 “가출했어요.”

 

 슈에는 한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차갑게 대답했다. 볼프강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슈에는 그런 볼프강의 반응이 가출을 한 이유를 묻는 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슈에는 별 거 아닌 투로 이야기했다.

 

 “언니랑 우리 공주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

 “그리고 내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 이상, 볼프강 슈나이더 씨를 제대로 만날 수도 없을 거 아니에요.”

 “그럼 나 보러 왔다는 것도 포함되는 건가?”

 “긍정적인 의미로는 아니죠. 그냥 볼프강 슈나이더 씨가 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체크할 겸 해서. 불시검문이라고 할까요?”

 

 슈에가 볼프강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볼프강 앞에 내민 슈에가 또박또박 말했다.

 

 “제가 그 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하시죠?”

 “...똑바로 몸 간수 잘 해라?”

 “...그렇지 않으면 내 검으로 베여버릴 거라고.”

 

 검으로 베어버린다, 그건 조금 고상한 표현이다. 그 때의 슈에는 분명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암살당하고 싶지 않으면이라고 말했다. 슈에는 그 부분은 정확히 기억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볼프강의 입장에서는 검에 베이든, 암살당한다고 하든지 그거나 그거나라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걸 지금 아주 자세히, 체크할 예정이에요.”

 “잠깐, 그 말은...?”

 “잠시 이 집에 실례 좀 범할게요. 짧게 일주일 정도 있다 갈 거니까.”

 “...”

 

 짧게 일주일, 이것도 슈에 입장에서나 짧지, 볼프강 입장에서는 그 시간마저도 매우 길고 더뎠다.

 

 볼프강은 잠시 고민했다. 앨리스나 재리에게 부탁해서 바쁜 일이 오늘부터 마침 일주일 있는 척 하고, 집밖을 나선다든지. 이런 볼프강의 도피처를 슈에는 생각보다 가볍게 막았다. 치사하게도 언니 찬스를 써서.

 

 “도망칠 생각 하지 마세요. 언니한테 볼프강 슈나이더 씨에게 내가 머무는 일주일 동안 별 계획 없는 거 다 듣고 왔으니까.”

 “...”

 

 이렇게 볼프강에게 있어서 살벌하기 그지없는 처제와의 일주일간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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