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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을 우물거리는 비안카의 왼쪽에는 루나가, 오른쪽에는 소마가 각각 서 있으면서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들의 방향에 있는 비안카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붙잡으면서. 루나가 됐다, 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뿌듯하게 끄덕였다.
“역시, 잘 어울릴 줄 알았어!”
루나가 잘 어울린다고 하는 건 비안카의 왼쪽 트윈 테일을 묶고 있는 옅은 벚꽃색 리본에게 한 말이었다. 그에 반해 오른쪽에서 소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루나 것도 잘 어울리지만, 내 것도 괜찮지 않아?”
소마가 말하는 것도 루나와 같은 리본을 뜻하는 바였지만, 소마의 리본은 좀 더 진한 짙은 분홍색의 리본이었다. 위쪽에 가지런히 묶여있는 루나 쪽 리본과는 달리, 소마 쪽 리본은 그보다는 살짝 아래에 묶여있었다.
만약 볼프강이 봤다면 내 딸 가지고 무슨 인형놀이를 하냐며 화를 내었을 것이다. 볼프강이 없기에 이런 좋은 내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열심히 마카롱을 먹는 비안카를 보며 루나와 소마는 한 가지로 정의된 결론을 정했다.
“역시 비안카는 너무 (사랑스러워)귀여워~~!!”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어떤 옷을 입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든 다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루나와 소마는 서로 손을 맞잡고 스승님의 따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이모와 피는 이어지지 않은 언니의 태도에 비안카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비안카 원래부터 귀여운 거 다 알고 있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알면 알수록 귀엽다는 거지!”
소마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비안카를 폭 안았다. 비안카는 그런 소마에게 마카롱을 먹는데 방해가 된다며 작게 투정을 부렸다. 그런 말을 할수록 소마의 손아귀 힘은 더 강해지는 법이었다.
마카롱을 먹은 비안카는 또 마카롱을 먹기 위해 접시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곧장 손짓을 멈추었다. 허나 어린 아이가 감정을 숨기는 것은 매우 서툰 일이었다. 마카롱을 더 먹고 싶다는 비안카의 얼굴이 확연히 드러나 루나가 물었다.
“비안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건 아니고 엄마랑 약속했어.”
“파이 선생님이랑?”
“응, 엄마랑 단 거 많이 안 먹겠다고 약속했어.”
여기서 더 먹으면 혼날 거야...라고 시무룩해하는 비안카를 보며 루나와 소마는 다시 한 번 뿅가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마카롱을 무한정으로 먹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비안카가 약속을 한 상대가 파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볼프강의 잔소리도 무섭지만, 파이의 잔소리는 그것보다 열 곱절은 더 무서웠다. 루나는 어린 아이의 비장한 각오를 칭찬해주었다.
“약속은 중요한 거니까, 그만 먹기는 해야지. 좋아, 다음에 이모가 또 마카롱 사줄 테니까 지금은 참자.”
“응...”
루나가 접시를 치우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마는 불쑥 비안카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딸기맛 막대사탕 하나. 비안카의 동그래진 눈을 보며 소마가 쉿!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달콤한 소리 하나.
“이건 언니랑 비안카 만의 비밀이다. 알았지?”
“응...!”
비밀도 약속의 일원이야. 암, 그렇고말고. 비안카는 소마가 준 막대사탕을 주머니에 잘 집어넣었다.
* * *
“자, 검사 다 끝났어요.”
“고마워요, 재리.”
파이는 검사용 가운을 벗었다. 자신의 시간 관련 능력 때문에 재리에게 일정 주기로 검사를 받는 것이 파이는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의 자녀의 건강에 대한 것도 재리에게 일임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거기에 자신이라는 짐을 더 얹은 기분이 들었다. 차트를 훑어보며 재리가 기분 좋게 말했다.
“특별한 이상은 없네요. 관리를 아주 잘 하고 있나보네요.”
“물론입니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좀 많이 늘었어야지요.”
파이가 웃었다. 재리도 덩달아 웃었다. 비안카가 태어난 이후, 파이는 부쩍 웃음이 많아졌다. 물론 예전의 파이가 우중충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한 번도 웃지를 않는 차도녀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무언가, 확연히 다른 말로는 설명을 잘 할 수 없는 미소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재리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볼프는요?”
“재리에게 볼일이 있다고 하니 잠깐 산책을 다녀온다며 샛길로 가버렸습니다. 1시간 있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1시간...”
재리는 시계를 보았다. 파이와 만나고서 35분이 지난 뒤였다. 그렇다면 볼프강이 돌아오는 데에는 25분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재리가 말했다.
“아마, ‘그 일’ 때문인가 보네요.”
“네, 맞아요. 선배도 그래서인지 그렇게 자리를 비켜주신 거 같아요.”
파이가 재리에게 있는 볼일. 그건 시간 능력자인 자신의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 일’ 과 관련해서 볼프강도 파이만큼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볼프강은 여간 ‘그 일’ 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태도였다. 파이가 한숨을 쉬었다.
“꼭...6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6년 전이라면...”
“...아직도 껄끄러운 건 똑같은 모양이네요.”
잠깐 사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볼프강은 어린 아이를 매우 싫어했다. 물론 입으로만 그렇게 말할 뿐이지, 볼프강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건 2분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주 잘 드러났다. 그렇기에 6년 전의 파이는 별로 깊은 고민 없이 볼프강에게 2세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날 파이는, 무섭게 변해버린 볼프강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길게 오고갔지만, 볼프강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아이는 별로...
...원하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볼프강은 미안하다며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린 파이가 침실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볼프강이 단단하게 자물쇠로 잠근 터였다.
그 날 처음, 마냥 사이좋은 줄 알았던 신혼부부는 의견의 불합치를 보였다.
파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별로라고 하기에는 앞서 설명했던 볼프강의 태도들이 그 증거가 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볼프강은 정확하게 다시 말해주었다.
-난...내 아이는 별로...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아이를 책임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볼프강은 인식하고 있었다. 전자에 대해서 마냥 자비롭던 볼프강도 후자에 관해서는 매우 무섭게 돌변했다.
볼프강의 이런 생각은 분명 어떤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터였는데, 야속하게도 볼프강은 그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파이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파이는 이에 대해서 볼프강의 오랜 친구인 재리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재리조차도 그 질문에 대한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사람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차이. 이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강요할 권리는 없었다. 허나 파이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볼프강의 그런 태도는 ‘가치관’ 보다는 ‘어떤 경험’ 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라는 것. 실제로 볼프강은 비안카가 태어났을 때,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고 좋아해주었다. 딸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볼프강이었다. 비안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 바쁜 파이를 대신해 자원해서 비안카의 양육을 해주었던 것도 볼프강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사냥터지기> 팀 내부뿐 아니라 유니온에 전체적으로 딸 바보라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파이는 볼프강의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 라는 말에 더욱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볼프강은 도대체 무엇을 겁내고 있는 걸까. 무엇을 무서워하기에 파이 앞에서조차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일까. 파이는 약간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파이가 이에 대한 일로 재리와 상담을 한다는 걸 볼프강은 보기 좋게 눈치를 챘다. 그리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런 태도를 봐도 볼프강이 6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파이는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희망은 조금 있었다. 자신과 쏙 닮은 예쁜 딸 비안카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주고, 지켜봐주고 있다는 것이.
지금은 그 작은 빛무리 만으로 파이는 만족하려고 한다. 파이는 푸념을 내려놓았다.
“전 처음에 비안카를 선배가 모르는 척 할 줄 알았어요.”
“볼프는 그렇지 않아요, 파이.”
“네, 맞아요. 재리 말이 맞죠. 하지만 만에 하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그렇게 되면 어쩌나...무서웠어요.”
파이도 무서웠다. 볼프강의 만에 하나라는 태도를 걱정한 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볼프강의 그 상처받은 표정을 다시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얕은 살얼음판.
재리가 말했다.
“제가 봐도 볼프는 ‘어떤 경험’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거 같아요.”
“재리의 생각도 역시 그렇군요.”
“그리고 저는 감히 추측하건데, 그 원인이 볼프의 가족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머그컵을 쥐고 있던 파이의 손아귀의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곧이어 자신을 책망했다. 6년이라면 그렇게 짧은 기간도 아니다. 그 6년이란 시간동안 그런 예상 하나 못했다는 것에서, 자신이 참으로 멍청하다고 느껴졌다.
그러했다. 볼프강은 이때까지 자신의 가족에 대해 깊은 말을 하지 않았다. 볼프강이 파이의 가족을 보기 위해 중국으로 자주 가기는 했어도, 파이가 볼프강의 가족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어딘가의 슈나이더겠거니 했었다.
“물론 이건 제 추측이에요. 볼프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우리가 모르는 건 당연해요, 파이. 그러니까 너무 자신을 자책하지 마세요.”
“그렇지만...”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다고요. 파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조금 있으면 볼프강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볼프강이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비안카에게 가겠지. 자신이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존재들에게, 자신이 울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파이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볼프강이 돌아오기 5분 전의 일이었다.
* * *
비안카가 두 살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비안카는 엷은 하늘색 털 드레스에, 토끼 귀 모양이 달린 모자가 있는 옅은 핑크색의 털 망토를 두르고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무릎에는 혹여 넘어질 때를 대비한 보호대가 제대로 착용되어 있었다. 파이는 잔디밭이기는 해도 혹여 사랑하는 딸이 넘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비안카의 근처에서 비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두 모녀(母女)를 보던 볼프강은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행복하네.
-네?
-행복하다고.
그 때의 볼프강은 웃었다. 웃기는 했는데, 어딘가가 분명하게 아픈 모양으로 웃었다. 그러나 직후, 비안카가 넘어져 우는 바람에 파이는 금방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 일이 떠오르는 건 왜였을까. 아마 재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의 볼프강의 행동도 볼프강이 겪은 ‘어떤 경험’ 에 빗대어서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역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파이의 눈이 비장하게 빛났다.
만약 볼프강의 그런 모순된 태도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면 파이는 어찌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난? 아니, 비난은 하지 않는다. 설득? 설득은 오히려 파이가 당할 거 같다.
그냥, 파이는 볼프강을 꼭 안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불필요한 말은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이 울고 힘들었을 때 말없이 손을 붙잡고 안아주던 볼프강처럼, 파이도 똑같이 볼프강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게, 지금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였다. 파이의 왼손 약지에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