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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단편)

190711 볼프파이

애쿼머린 (루이벨라) 2019. 7. 11. 15:23

 "선배, 잠깐 이리 와 보시죠."

 "...?"

 갑작스러운 후배 겸 사랑스러운 애인의 말에 볼프강은 의구심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의문은 곧장 접고서 보고 있던 e-book에 책갈피를 끼우고서, 태블릿의 전원을 껐다.


 파이는 지금 볼프강의 개인실에서, 볼프강의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신발까지 벗고 아주 편안하게 있어서 누가 보면 볼프강이 객(客) 신분일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글을 읽을 때는 의자가 편하다면서 볼프강은 서재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의자 옆에 쌓인 요깃거리가 제법 많은 걸로 봐서는 의자에서 용케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눈에 보였다.


 볼프강은 파이를 따라 침대에 푹- 앉았다. 1인분의 무게가 더해지자, 침대는 잠시 요란스럽게 출렁거렸다. 볼프강과 파이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래서? 왜 바쁘신 날 굳이 부른 이유가?"

 "바쁘시지 않으면서 바쁜 척 하시지 마십시오. 지금 선배가 읽고 있던 거 무협소설인 거 다 압니다."

 "독서는 아주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시시콜콜하게 이런 대화를 하기 위해 부른 것은 아니고...또 다른 무슨 목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우물쭈물 머뭇거리는 파이의 태도에서 범상치 않는 일이라는 건 대강 짐작은 하고 있는데...


 볼프강이 상냥하게 물었다.


 "왜 그래, 파트너? 무슨 일 있어?"

 "네, 넷?! 제, 제가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까?"

 "넌 얼굴에 감정이 항상 드러나니까 알기 쉽거든."

 "..."


 이미 다 들통이 난 이상, 파이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심호흡도 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 잡은 순간, 갑자기 무릎을 꿇고 일어나 볼프강의 얼굴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 악력이 쎄서 볼프강은 당연한 통증을 느꼈다. 볼프강은 파이에게 얼굴이 고정된 채로 파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파, 파트너?? 이게 지금 무슨..."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용서? 용서라니? 도대체 뭔 용서를...


 "..."

 "..."


 ...생각을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볼프강의 입술에 다른 사람의 피부가 맞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차라리 맞닿았다, 라고 표현을 한 건 조금 순화된 표현. 실제로는 파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선을 다하며 볼프강의 입술을 향해 격렬하게 자신의 입술을 부딪혔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과 비슷한 류의 파찰음이 났으니 당연히 세게 부딪힌 게 분명했다. 둘은 작은 소동 이후 서로 아려오는 입술을 어루만졌다. 먼저 신음소리를 낸 건 볼프강 쪽이었다.


 "...아야..."

 "...으으...너무 아프네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확 부딪히라고 했어?"


 이상하게 볼멘 소리가 나갔지만, 볼프강은 지금 파이가 한 것이 무엇인지는 대강 눈치는 깠다. 그런데...자신의 애인은 너무 우직하고 성실하여서, 게다가 긴장도 한 탓이었는지 힘 조절이 안 되어서 그렇게 접촉사고가 아닌 강렬한 뺑소니와 같은 결과가 된 것 뿐이겠지만.


 볼프강은 계속 입술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도대체 누가 시킨 거야?"

 "네...?"

 "1호, 2호, 그것도 아님 앨리스?"

 "...!!"


  화악- 붉어지는 파이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답을 정확히 집어낸 모양이다. 


 "역시...주동자는 그 세 사람이었구만."

 "소마 양이 물어보았거든요. 그...그...키스는...하셨냐고 하면서."

 "그래서? 안 했다고 말했어? 그러더니 막 뭐라뭐라 하고?"


 끄덕-끄덕- 볼프강은 조만간 소마와 아주 긴 개인 면담을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에는 귀찮다고 재리에게 늘 전담하는 일일텐데 말이다. 파이는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선배는 저에 대한 마음이 식은 건...아닌...지."

 "내가 왜? 내가 대놓고 그런 말 한 적 있던가?"

 "네?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 말 믿지 마. 적어도 내 감정에 대해선 내 말만 무조건 믿어. 알았어?"


 묘하게 잔소리를 하게 된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부끄러운지 계속 뺨이 붉은 파이의 얼굴을 이번에는 볼프강이 두 손으로 붙잡았다. 잔뜩 긴장을 해서 힘이 들어갔던 파이와는 달리, 부드럽게 감쌌다는 표현이 걸맞게.


 "그보다 화끈하네. 그렇게 강렬한 첫 키스는 처음이야."

 "놀리지 마십시오..."

 "놀리는 거 아닌데?"


 볼프강이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볼프강이 먼저, 입술 박치기가 아닌 진정으로 수줍은 키스라고 할만한 걸 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 하다. 물론 그 영겁의 시간은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곧 깨져버렸지만.


 잠시 이성이 돌아온 볼프강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볼프강의 머릿속으로 지금 자신이 저지른 짓(?)의 전 과정이 슬로우모션으로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파이는 아까부터 계속 붉었던 얼굴이었지만, 아까보다도 더, 더, 100배는 더 빨개진 거 같았다. 그 열꽃이 키스를 하는 동안 볼프강에게도 옮겼는지 볼프강의 새하얀 편인 뺨에도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먼저 자리를 뜬 것은 볼프강이었다. 막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면서 방을 나가는 데에 필사적이었다. 파이는 볼프강을 붙잡지 않았다. 애초에 볼프강이 온갖 변명을 하면서 방을 나가는 거 자체에 대한 자각도 하지 못했다. 파이는 살짝 입술을 손가락으로 스쳐보았다. 왜인지 그 부분만 유독 화상을 입은 거 같이 뜨거웠다. 아니, 실제로는 안 그랬지만 지금의 파이가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이렇게...'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였다니. 그와는 반대로 방으로 나와서 문 앞에서 밝은 대낮에 마른 세수를 하는 볼프강은 그와는 사뭇 다른 심장 어택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거 하나 했다고 이렇게 좋아 죽겠다니...나 정말 미치겠네...'


 미친 건 맞지. 그래, 파이 윈체스터에게 미치긴 했지. 하지만 어쩌랴.


 '좋아하는 건 맞으니까.'


 잠깐의 안정을 취한 볼프강은 생각했다. 내일은 소마와 개인적인 면담을 꼭 가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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