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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단편)

[볼프파이] 엄마미소 지어지는 볼프파이 1 & 2

애쿼머린 (루이벨라) 2019. 3. 31. 01:33

※ 리퀘박스에 ‘볼프파이 볼 때마다 엄마미소 짓는다’ 라는 글이 2개 중복으로 올라가있어서 쓰는 짧은 ‘엄마미소 지어지는’ 볼프파이 2개
 
 
 
 
 
01.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데이트, 라고 불리는 걸 시간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저 둘이 본격적으로 할 재간이 없었던 시기의 일이었다. 그래도 모처럼의 둘만 있는 시간이었고, 불과 몇 분 전에 초토화시킨 훠궈의 양은 많았기에 둘은 잠시 그 근처를 산책하기로 결정했다.
 
 “참 맛집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선택한 맛집이라고. 맛이 없을 리가 있겠어?”
 “네이~네이~”
 
 태평스럽게 저런 말은 하지만 볼프강은 안내 책자를 뒤져보면서 밤을 새운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인인 파이가 중국 음식을 안 좋아하리라는 법은 없었을 테고, 고향을 꽤 오래 비웠기에 약간의 향수도 가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결정한 메뉴였다. 볼프강은 훠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파이가 좋아해주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산책길도 아주 잘 되어있군요.”
 “플라타너스 나무네. 여름에 왔으면 더 절경이 분명했을 텐데.”
 
 중국음식점 근처에 왜 생뚱맞게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이라고 생각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둘은 이대로 본부로 돌아가기에 아쉬웠으며, 길게 뻗은 산책로는 그런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줄 핑계거리로 충분했다. 앨리스가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려고 한다면, ‘산책로가 생각보다 길어서.’ 라는 반은 사실이었던 이유거리는 되었으니까.
 
 그만큼 볼프강은 – 파이는 잘 모르겠지만 – 파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도 필요했다. 원래 연애라는 게 그런 것이 아닌가. 시작은 풋풋한 감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둘이 사귀기 시작한 건 불과 한 달 전의 이야기. 아직, 그런 풋풋함은 남아있다고 봐도 무방한 시기이지 않은가.
 
 볼프강은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파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허전한 파이의 손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아, 손잡아도 되려나?’
 
 볼프강은 잠시 망설였다. 볼프강은 연애를 몇 번이나 해보았다. 적어도 파이보다는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성과 손잡는 것도 몇 번쯤은...했다. 그게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 게다가 파이와 손을 잡으려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전 중에 몸을 부추겨주거나, 감성적인 파이가 뛰쳐나가려는 걸 잡기 위해서라던가.
 
 ‘생각해보니 의외로 횟수는 많구나...’
 
 다만 그 때에는 제대로 된 감정이 실리지 않았을 뿐. 볼프강은 씁쓸했다.
 
 어느 순간 볼프강이 옆에 없다는 걸 깨달은 파이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보폭이 느려진 볼프강은 이제는 자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있다는 걸 모른 채,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얼굴이 퍽이나 진지해서 파이는 함부로 건들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또각또각- 파이는 뒤쳐진 볼프강을 향해 제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서 왔다. 볼프강과의 보폭 차이는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가온 파이는 갑자기 볼프강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볼프강은 영문 모를 이 상황에서 파이는 태연히 지시까지 했다.
 
 “이리 줘보세요.”
 “뭘...?”
 
 이렇게 되묻는 자신의 얼굴은 얼빠졌을 것이다. 파이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 잡고 싶었던 것 아니신가요?”
 “...!”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졌지?! 되도록 표는 내지 않았던 거 같은데. 볼프강이 알기로 파이는 이런 분야에서는 자기보다 훨씬 둔했다. 그래서 볼프강은 신이 나서 하는 걸 파이는 대부분 뚱한 표정으로 대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멍해있는 볼프강을, 보다 못한 파이가 먼저 볼프강의 따로 놀고 있는 오른손을 덥석 잡았다. 얼음을 다루어서 항상 체온이 차가울 줄 알았는데, 맞닿은 파이의 손은 오히려 볼프강의 손보다 더 따스했다.
 
 그렇게 손을 맞잡고 있는데 파이의 차분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걸을 때에 이렇게 손을 잡으면서 걷곤 했습니다.”
 “...”
 
 그 누군가 중에 분명 남자는 없으리라, 없으리라...볼프강은 최면을 걸었다. 파이는 싱긋 웃었다.
 
 “사실 그런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선배 손이 자꾸 제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그만 눈에 보여서 말이지요. 언제쯤 잡으려는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제가 먼저 이렇게 하는군요.”
 “...”
 “혹시...기분 나쁘셨나요?”
 
 아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쪽이었다! 볼프강의 얼굴은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볼프강은 나머지 다른 손으로도 파이의 손을 감싸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고맙다.”
 “네? 겨우 이런 걸로 고맙다는 말 들으니 이상...”
 “아니야, 진짜로 고마워...”
 
 먼저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주기까지 해서. 볼프강은 이 산책로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한순간이나마 바랬다.
 
 
 
 
 
02.
 
 “파트너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구나...”
 “네...선배가 살던 곳보다는 많이 촌이죠?”
 “아니야, 전혀.”
 
 오히려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이 풍겨서 좋은데. 마치 옛날 문학 작품의 하나를 보는 기분이야. 이런 볼프강의 반응에 파이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고향을 떠나온 지 몇 년.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으나, 우연찮게 이번 임무 수행지가 파이의 고향과 가까워서 파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고향과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먼 장소에 볼프강을 데리고 왔다.
 
 정확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나 비슷한 느낌의 마을. 파이는 높게 솟은 봉우리 하나를 가리키며 볼프강에게 말했다.
 
 “저 산 하나만 넘으면 제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입니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지?”
 “선배가 자주 읽는 무협 소설에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커다란 폭포도 있고, 동굴도 있고, 대나무숲도 있습니다. 갈대밭도 있고요.”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볼프강이 한숨같이 내뱉은 소감이었다. 파이는 그 말에 ‘언젠가는 분명 기회가 있을 거예요.’ 라며 일이 많다는 식의 투정을 부렸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아직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휠 오브 포츈으로 1분이면 가는 산봉우리 하나도 넘기지 못해 이곳으로 볼프강을 인도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볼프강은 별 불만은 없었다. 볼프강 슈나이더라는 사람은 눈치가 너무도 빨라서, 이미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차분하게 기다려줄 뿐.
 
 그러고 보면 그랬다. 사귀기 직전, 볼프강은 파이에게 말했다.
 
 -기다려 줄게. 걱정하지 마.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신의 파트너를 보며 파이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볼프강은 그 미소를 그래도 고향 근처에 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로군, 이라고 치부했지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 – 걸어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 에 두 사람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파이는 탄식같이, 아니면 감탄같이 그 나무의 이름을 읊조렸다.
 
 “아카시아 나무로군요.”
 “봄이군.”
 
 봄날, 정말 그랬다. 이제야 파이는 자신을 감싼 낯설지 않은 고국의 공기가 따스함을 체감했다.
 
 그러고 보니 파이의 집 근처에도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어렸을 적 슈에와 같이 아카시아꽃을 따서 간식 삼아 먹고는 했었다. 그 때의 추억은 파이의 기준에서 볼 때 아주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었기에, 파이는 일순의 향수에 젖어 아카시아나무 가지 하나를 꺾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파이의 행동에 볼프강은 눈만 깜빡였다. 파이는 꽃을 하나 따,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은은하고 달콤한 내가 입속을 감돌고, 혀에는 어린 시절 파이를 끊임없이 유혹하던 달달함이 느껴졌다. 파이는 변하지 않은 이 맛에 감격을 했고, 자신의 이 돌발행동을 멀뚱히 보는 볼프강에게 얼른 부연설명을 했다.
 
 “어렸을 적에 봄이 되면 종종 이렇게 꽃을 따먹었어요.”
 “그래?”
 
 볼프강은 파이의 손에 걸린 꽃을 따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잠시 입을 오물거리던 볼프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 맛 안 나는데?”
 “선배 같이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못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분명히 나요. 향긋하고 달달한 어린 시절의...”
 
 파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행복했던 추억은 거기서 끝나면 되었을 걸, 불행했던 기억으로까지 파이를 인도했다.
 
 “...”
 “...”
 “...죄송해요.”
 “난 네가 그렇게 갑자기 사과를 할 때가 제일 무서워, 알아?”
 
 침묵 끝에 파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 말에 볼프강은 불만을 표시했다. 아키시아 가지를 쥔 파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럴 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볼프강은 너무도 잘 알았다.
 
 하기야, 몇 년을 같이 옆에서 지낸 파트너인데. 파이는 자신의 얼굴에 닿는 감촉 덕에 볼프강이 파이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는 걸 자각했다.
 
 “괜찮아.”
 “...”
 “다 털어놔.”
 “...”
 
 짧은 말들을 해주는 볼프강의 목소리가 너무 따스해서 파이는 그만 눈물이 솟구칠 뻔 했다. 가까스로 눈물샘을 부여잡아 그런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말이다. 대신 파이는 좀 더 볼프강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신이 쥐고 있던 아키시아 가지가 망그러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파이가 먼저 볼프강에게서 떨어졌다.
 
 “아하하, 저도 아직 미숙한가 봅니다. 선배의 눈에는 저는 아직 어리게 보이겠지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볼프강은 말을 목 너머로 삼켰다. 지금은 그런 말보다는 부드러운 행동 하나가 더, 좋을 것이다.
 
 볼프강은 파이의 손에 있는 가지 중 성한 부분을 또 잘랐다. 접목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순백의 하이얀(白, Bai) 꽃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릴 이의 머리에 올려준 것뿐이다.
 
 “...”
 “처음부터 생각은 했지만...”
 
 정말 잘 어울리네. 볼프강은 자신의 작품에 만족스러워했다. 손에는 꽃다발 – 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볼프강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 이, 머리에는 같은 꽃으로 만든 장신구가 있는 제 연인의 모습이 볼프강에게는 너무도 눈부시게 보였다. 마치 따스한 5월의 신부 같았다.
 
 하얗게, 눈앞이 점멸될 거 같았다.
 
 아카시아는 파이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그 점을 볼프강은 남몰래 기억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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