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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 스토리(시즌 1 ~ 시즌챕터 1)의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

※ 작가가 임의로 생각하고 해석한 부분이 있음

※ 파이 스토리의 대사 중 각색한 부분이 있음

※ 이야기의 시간대 뒤죽박죽

※ 마지막 편

※ 전편 : http://closerswriters.tistory.com/65






 재능 있는 자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파이는 그 감정을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워했다. 괴로움은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죄책감을 늘 가지면서 사는 삶이 어떠냐면, 아가미도 없는 생물이 심해에서 어찌저찌 호흡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과 같았다. 숨이 머질 거 같아서 제 몸에 있는 산소를 최대한 아끼려고 스스로 목을 조르는 꼴이다. 목을 조르나 안 조르나 어차피 죽게 되는 건 똑같았다.

 

 ‘죄책감이란 쇠사슬은 다른 이가 당사자를 향해 조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슬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매듭을 잡은 건 항상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자. 손을 놓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렵고 갈등이 되지만, 한 번 놓게 되면 그 후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중간에 손을 아예 놓아버리거나 살짝 풀어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기 어려워지니까.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살아야했으니까.

 

 파이는 대견하게도 제 목을 향해 항상 겨누고 있는 쇠사슬을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이었다. 오히려 더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잡아당겼지, 느슨하게 그 끈을 놓은 적은 없었다.

 

 슈에의 깊은 마음을 내다보지 않으려했던 것. 얼마 전엔 그런 이름의 죄목이 하나가 더 늘었다.

 

 슈에는 재능이 있는 자였다. 재능이 넘치다 못해 이제는 슈에의 일부분까지 되어버린 그 재능을 파이만 부러워하지 않았다. 파이와 슈에 자매와 같이 춤을 배우는 동세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춤을 추는 슈에를 부러워했다. 감정이란 참 오묘해서 조금만 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게 변한다. 전자로 변하는 건 극히 일부분, 대부분은 후자처럼 변질된다.

 

 슈에 앞에서 웃던 자들이, 뒤에서는 슈에를 향한 푸념을 내놓기 일쑤였다. 파이만큼의 악담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그 무리 중에 그나마 양심이 있던 자는 슈에의 자매 앞에서 그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용서는 아니고 이실직고. 파이는 그 때 참 복잡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파이를 자신들의 무리에 넣지 않으려고 했기에, 파이는 이 사실을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심지어 슈에가 검을 얻은 직후에는 그 검마저 뺏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검은 기특하게도 자신의 주인을 잘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이 아닌 자가 만지면 검은 즉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뺏으려는 자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 이 세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냉기를 접한 사람은 다시는 그 검에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검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켰다. 그리고 자신의 힘을 오직 주인을 위해 기꺼이 사용했다. 그 덕분인지 그 검과 추는 슈에의 춤은 나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졌다. 원래도 아름다웠던 슈에는 이제는 정말로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어. 내딛을 수가 없어. 네 빛에 내가 가려지니까.’

 

 파이는 그런 생각을 매일 했었다. 그러다가 이내 체념도 한다.

 

 ‘, 원래부터 그림자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지...’

 ‘그래도 그림자도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닐 텐데.’

 ‘애초에 난 슈에의 그림자도 아니지 않을까. 그림자라면 똑같이 따라해야하는데, 난 슈에를 전혀 따라갈 수가 없어...’

 

 무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꿈틀- 거렸다. 그것은 태연히 파이에게 인사까지 건넸다. 친근하게 대화를 붙이는 그 목소리를 외면했으면 좋았을 텐데...

 

 ‘딱 한 번이야.’

 

 딱 한 번만 빌리는 거야...

 

 ‘아니, 빌리는 것도 아니야. 만져보기만 하는 거야.’

 

 뺏을 것도 아니야. 그냥, 순전한 호기심일 뿐이야. 이 검을 쥐었을 때의 감각이 궁금한 것뿐이야...

 

 슈에가 먼저 깊이 잠이 든 어느 새벽의 일이었다.

 

 

 

* * *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슈에는 저를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슈에를 부러워하듯이.”

 

 이 미숙한 언니에게 부러워할 것이 뭐가 있었는지...파이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그 때의 슈에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쌍둥이 동생은 호기심이 참 많았다. 특히 산 너머에 있다는 것들에 대해 궁금해 했다. 항상 높은 동산 위로 올라가 등고선 너머를 보며 슈에는 파이에게 말했다.

 

 -언니,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산이 또 있지 않을까?

 -그 산 너머에는 또 뭐가 있을까?

 -또 산이 있지 않을까? 절벽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항상 자신이 봐온 풍경이 산맥밖에 없어서 파이는 이런 식의 대답만 했다. 사실 파이는 슈에보다는 그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파이는 지금 이곳에서 지내는 게

 

 슈에가 지금 이 앞에 있다면 파이는 말해주고 싶었다. 슈에, 늘 궁금하던 바깥세상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산 너머에는 산이 이어져있는 게 아니었어.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바다는 호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야. 그 바닷가에서 맞는 바람은 호수에서의 바람과 달리 눅눅하고 짭조름한 내가 나더구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내가 직접 밖으로 나오게 된 것도 슈에, 널 위해서였구나.

 

 잡고 있는 검에서 한기가 살짝 느껴진다.

 

 슈에의 진심을 어렴풋이 알게 된 건 슈에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을 때, 자신의 진심을 말했던 때였다. 파이 또한 자신의 감정이 주체가 안 되어서 볼멘소리가 나가버린 그 때였다.

 

 슈에가 진심을 담아 솔직히 말했다.

 

 -언니는...! 언니는 나보다 훨씬 더...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잖아...!

 -난 그게 일족의 춤이라고! 너도 날 이해하지 못한 거잖아! 하려는 척 하는 거잖아!

 

 그 당시의 슈에의 말은 파이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한 게 파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일족의 기술을 계승하기 위한 수련을 받았다. 그러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도 그것, 하고 싶었던 것도 그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을 척척 잘 해내는 슈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참 이해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슈에의 저 진심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파이가 위상력에 각성하기 전의 일이었다.

 

 -언니, 우리 언제 한 번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

 -. 행선지는 안 정해도 돼. 언니나 나나 둘 중 한 명이 계승자가 되어버리면, 둘이서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없잖아.

 

 일족의 계승자가 되는 건 분명 슈에일 텐데, 슈에는 어렸을 때부터 참 착했다. 파이는 아무 말을 안 했지만 슈에는 계속 쫑알거렸다.

 

 -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는 바다는 어떤지 가늠이 가지 않아. 정말 호수보다 클까?

 -글세...

 -난 그걸 언니랑 같이 보고 싶어!

 

 슈에는 정말로, 파이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파이도 그 마음만큼 슈에를 좋아했기에 꼭 언젠가는 여행을 가자고 약속도 했다.

 

 어쨌든 자매의 첫 싸움이 있던 날, 슈에는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난 언니가 너무 나에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슈에...

 -언니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찾아. 그리고 그걸 하면서 살아. 나와 같이 갇혀있지 말고. 이게 내 오랜 소망이야.

 

 슈에의 눈동자는 촉촉했다.

 

 이토록 소중한 것을 잊고 있었다니. 그리고 자신은 얼마 가지 않은 커다란 실책을 해버리고 만다. 그림자처럼, 대용으로라도 사는 것에 만족했으나, 자신은 슈에가 아니라는 사실에 참 좌절했었다. 그 후에 슈에를 구하기 위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바깥으로 직접걸어 나가고, 많은 이들과 만남으로써 하나씩 배워간다. 슈에는 어쩌면 이걸 원했을지도 모른다. 주워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직접, 스스로.

 

 여전히 슈에의 눈동자색이 고요히 스며든 붉은빛의 눈을 볼 때마다 말수는 급격히 적어진다. 그래도 최근에는 그 눈동자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파이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슈에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이는 파이 혼자서, 이 멋진 세계를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슈에도 같이 옆에 있어주길 원했다.

 

 한발자국씩 나아가면서도 과거를 붙잡고 있다. 그러나 붙잡고 있는 옛것으로 인해 오히려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옛날이야기는 여기서 끝, 이라며 마무리 지어지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 * *

 

 

 

 파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흰 눈이 지금도 내리고 있군요...”

 “지금은 한창 겨울이니까요.”

 “저희 자매도...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났던 거 같습니다.”

 

 흰색과 눈. 두 단어가 합쳐져서 하나의 뜻을 가진 단어가 된다. 홀로 있을 때에야 흰색은 두드러지긴 하나, 파이는 그래도 역시 슈에가 옆에 있어주면 했다.

 

 흰()색이 아닌 눈()이라니...전혀 상상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작가의 말]


이렇게 총 3편으로 파이 & 슈에 자매 소설을 마무리 짓네요. 개인적으로 슈에에 대한 이야기가 본스토리에서 더 자세히 나올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쓸 때 상당히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 더 많았는데(예를 들면 파이가 파란색을 고집하는 것), 제 재간이 아직은 부족한지 이렇게 3편으로 끝을 맺게 되네요.

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 및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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